돌깡신선

(2007-11-13 13:19:15, Hit : 9022, Vote : 830)

청계천 전자상가 수리점...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없는 것이 없다는 청계천 상가에서 일어난 일 한토막이다.
없는 것이 없다는 청계천 상가에도 없는 것이 있었지만 (중국에서 산 가방 바퀴) 사실 그곳은 너무 길고 취급하는 상품도 많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 지 찾기 어려운 면도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전자상가가 유명했었다.
청계천에 가면 각종 테레비부터 전축 라디오 등을 고치고 살 수 있었고 동네 전파사에서 고칠 수 없는 것들 조차도 이곳에 오면 모두 싼 가격에 고칠 수 있었다.
후에 용산전자상가가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심지어 컴퓨터조차도 청계천이 더 선배이다.

나는 가끔 이러한 청계천을 찾아가는데 이번에 간 이유는 다른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는 동안 지루하지 않으려고 항상 지니고 다니는 어학 연습 녹음기를 귀에 꽂는 순간 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배테리가 다 되었구나 하고 새 배터리로 교체를 했지만 이 넘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
이상하다? 어제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아니?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은 있었다.
녹음기 진행 버튼을 눌렀을 때 바로 테이프가 돌아가지 않고 잠시 다른 버튼을 눌르고 다시 눌러야 돌아가기 시작했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후에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고치는 길 뿐이다.
소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고찰해 본 결과 사소한 접속 불량인 모양인데~~~
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청계천 가는 길에 확실한 내막을 알아봐야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전에 오디오를 고쳤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 소비전문가의 기억력은 항상 이럴 때 그 본래의 능력을 발휘한다.
도대체 수리했던 곳이 삼풍상가였는지 세운상가였는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생각나더라도 위치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분명히 2층 어디였던거 같기는 한데....
이럴 때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ㅠㅠ

아래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이곳에 전자수리점이 어디 한 두 군데냐는 퉁명스러운 답변만 들었을 뿐...
결국 본래 찾으려고 했던 물건(전동드릴 충전기)는 뒷전으로 밀린 체 청계천과 종로 사이를 한시간 여 헤메인 발길~~~♪♬ 하고 난 뒤에야 겨우 수리점을 찾았다.

그러나 그 수리점에서 들은 이야기는 참담했다.
이렇게 작은 녹음기는 안 고친다는 것이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전에도 이곳에서 오디오를 고쳤다는 소리를 해서 그냥 내치지는 못했지만 작은 것은 눈이 안보인다는 핑계를 대고(칫! 나보다도 어려 보이던데...) 오갈데 없는 나를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청계천바닥의 길거리로 내 몰았다.ㅠㅠ
그러면서 한 마디~~ 요 건너편 골목에 가면 이런거 고치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내 뒷통수에 흘리면서....

하지만 나는 알아요♪.
이거 만지작 거려봤자 돈도 안되고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 뒤에 수리비도 제대로 받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것을....
할 수 없이 무거운 다리를 겨우겨우 옮겨 다시 청계천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하는 단 하나에♪...아니 녹음기에 목숨을 걸었다♪~~~거리에 짜식이라 욕하지 마라♪♬~~~
결국 다시 20여분을 허비한 뒤에야 수리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정말 조그만 수리점에 들어서자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른 분과 앉아 비데오카세트를 수리하고 있었다.

수리하는 아저씨가 나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뭘 고치려고요?
이거~~~ 하고 어학연습기를 내밀자.. 하던 일 손을 잠시 멈추고 진행버튼을 눌러본 뒤에 ..
배터리는 바꿨어요?
그럼요... 그거 새 배터리에요...
한 두번 눌러 보더니 이거 안되네~~ 그럼 고쳐야지 뭐...잠시 기다려요 이거 곧 끝나니까.
역시 전문가 답게 이미 사태 파악이 된 모양이다.

수리비는 얼마나 들까요? 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저씨 입에서 나온 답은
만원이요..
엥 @o@? 만원이요? 아니 요새 녹음기가 얼만데.. 고치는데 만원씩 들어요? 내가 볼멘 소리로 항변하듯하자... 그 아저씨 곁 눈질로 나를 쌱 째려본 뒤에
아! 안고쳐요~~ 다른 데 가봐요...

사태가 급반전 되어서 나는 걍 꼬랑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옆에 앉아있던 수리를 맡긴 아저씨가
아~~~ 왜 그래요... 여기서 고쳐요 내꺼 거의 다 끝났으니까 여기서 고치고 가요...다른데 가봐야 마찬가지에요...
안그래도 어쩔 수 없이 다시 황량한 청계천 뒤골목으로 내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젠 찍! 소리도 못하고 걍 서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이거 별거 아닌 고장인거 같은데....
속으로 중얼거려봤자 별 수 없으니 한 손에 녹음기를 들고 쭈뼛거리며 서 있을 수 밖에....

금방 수리가 끝나자 그 아저씨는 떠나고...
수리하는 아저씨 못 마땅한 듯 내 손에서 녹음기를 채가듯이 빼앗아들고 한 두번 더 진행 버튼을 눌러보더니 이내 드라이버로 뒤 뚜껑을 연다.
그러더니 안쪽 배터리실의 - (마이너스 극) 쪽의 스프링을 뻬빠로 갈며 내게 혼자말 처럼 중얼거린다.

이거 오랫동안 안 쓴 모양인데?
나는 비위라도 마칠 양으로 ... 아뇨~~어제까지 썼어요~~ 하며 상냥한 목소리로 애교까지 떨면서 서있었다.

그러더니 몇 번 뻬빠질을 하고 난 뒤에 다시 배터리를 껴 넣고 돌리자 수리 끝!
엥? @o@! 이게 모야... 그럼 저 접촉 불량이었단 말야? 아니 저렇게 간단한 걸...

그렇다 세상사 모든 일이 이렇게 알고 나면 간단한 것이다.
하지만 몰랐을 때는 그야말로 앞이 캄캄하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내 썬글라쓰 다리 부러졌을 때도 안 될 꺼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을 거친 뒤에는 다시 새것과 같이 되었다.

집에 입다가 찢어진 남방이 하나 있었다.
면으로 된 것이라서 막 입을 때나 입어야하지 하고 묵혀두었던 것이다.
또 오래 입어서 칼라가 너덜너덜해진 남방도 있었다.
또 소매 끝에 시보리가 닳아서 구멍이 난 점버가 있었다.
이것을 옷 수리점에 가지고 가서 수리를 하면 새것 같이 되어 나온다.
정말 놀라웠다.
특히 그 찟어진 남방은 어디를 수리 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잘 고쳐졌다.

자~~ 이런 데도 우리는 겨우 해봐야 몇천원에서 1~2만원 하는 수리비를 비싸다고 생각하고 깍으려고 한다.
그것을 몰랐을 때, 또 그것을 고치지 못했을 때의 안타까움은 모두 사라져 버렸기때문이다. (그래서 선불 받아야 한다니까요~~~)
만약 그 옷을 다시 새것으로 사려면 그 썬그라스를 새것으로 사려면 그 녹음기를 새것으로 사려면 ???
뭐~~~수리비에다 약 1 만원만 더 주면 새것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야~야~~그럴꺼 차라리 그거 버리고 새것으로 사라....
요새~~고치는 값보다 새것 사는게 더 싸게 먹혀....
이럴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왠 지 오래 입은 정이랄까?
마음에 드는 물건 이랄까?
내 손 때가 묻은 익숙함에서일까?
새것은 새것대로 신선한 맛이 있지만 오래 쓴 물건은 오래 쓴 물건대로의 편안한 정이 있다고 본다.

하기야 요새 물건 산 뒤에 A/S 센터 가지고 가면 다 해결 된다고 생각하지만 1년 지나면 무상서비스도 안되고 맡긴 뒤에 당장 가지고 올 수도 없어서 며칠 뒤에 다시 가야되는 불편함이 있다.
또 인터넷으로 산거면 다시 택배로 보내야 하고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동네 전파상이 최곤데...

그 아저씨가 녹음기를 조립하면서 한 이야기는 왠지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요새 사람들 이런 물건 수리하러 안와요.
거의 고장 나면 새거 사요.
하지만 나는 말이요.. 이거 만원 받고 고쳐주지만 이곳 월세도 내야하고 애들도 키워야 하고 생활을 해야 한단 말이요..
이거 하루에 몇 개나 고칠 거 같애요? 하루에 5개 못 고쳐. 그렇다고 집 주인이 월세 깍아주나? 그렇지 않거던... 그래서 동네 전파사들 다 망한거야... 조금 전에 저거 고쳐간 아저씨 응암동에서 전파사 하는 사람인데 고치다고치다 안되서 가지고 온거야...하지만 이제 이곳도 얼마 안가서 철거 된다고 하니 이제는 갈데가 없는거야. 이런 수리점 이제 다~~ 없어질꺼에요....흐~~음~~~~~~~

왠지 내쉬는 한 숨에 힘이 없어보인다...
아저씨 얼마에요?
만원!
네 감사합니다.

두 말 않고 만원을 지불한 뒤에 돌아서서 나오는 뒷 맛이 왠지 개운치 않다.
이런 곳에서는 내가 한국에서 찾던 정이 있었는데....
우리의 추억 속의 전파사 인데....
또한 기술자를 기술자로 전문가를 전문가로 대접하지 않는 우리의 풍토 역시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매우 복잡한 감정이 머리를 순간순간 헤집고 흐트려놓고 있었다.

가장 머리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뒷 맛은 ....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집에서 고치는건데....
너무 간단한 고장에 만원이 못내 아까운겨~~~~
하여간 인간은 화장실 들어갈 때 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니까아~~~~ ^^

그러면서 언뜻 나폴레옹의 일화가 생각났다.

여러분들 중에서 이 생 달걀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이리저리 해봤지만 생 달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보여주겠다며 생 달걀의 한 쪽을 테이블에 콱 찍어서 찌그려깨뜨려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렇게 할 꺼면 못 할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항의를 했다.
나폴레옹은 사람들은 모두 방법을 안 뒤에는 인정을 안하고 불평만 한다고 했다.

그렇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베껴 먹는 데만 능한 사람들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