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깡신선

(2005-10-18 15:16:32, Hit : 6866, Vote : 846)

거지 팔자 따로 있나?

거지 팔자 따로 있나?

요즈음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곤란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본의 아니게 집을 떠나 거리의 노숙자가 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는 경우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정말 거지 팔자가 따로 있나?
물론 역학 공부를 하다보면 거지 팔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군비쟁재라는 말이 있는데 여러 형제가 밥 한 그릇을 놓고 서로 싸우다 밥그릇을 뒤집는 형국이라 해서 대표적인 거지 팔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팔자라고 해서 꼭 거지가 되는 것은 아니고 멀쩡한 사주를 가지고도 거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 운영하는 가게에 거지라고 할까? 노숙자라고 할까 하는 사람이 한명 들어왔다.
옷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나고 얼굴은 여기저기 상처가 있었고 이도 부러진 정말 딱 보기에도 노숙자나 거지 형상의 남자가 가게에 들어온 것이다.
척 보기에 정신 상태도 약간 정상은 아닌 듯 했다. 대낮인데도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머뭇머뭇 하더니 물 한 그릇 마실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라고 대답한 뒤에 물을 한 잔 건네주며 그 행색이 초라한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니 씻지 않고 상처가 있어서 그렇지 얼굴이 매우 잘 생긴 것이다.
코를 보거나 눈을 보거나 이마를 보거나 상당히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보니 갑자기 이 사람의 사주가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이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그래서 일단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뒤에 이것저것 살살 물어보다가 생일을 물었다.
처음에는 횡설수설 하더니 생일을 물어보자 왜 생일을 물어보느냐고 해서 사주를 한번 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당장 자기가 내 사주를 봐주겠다고 한다.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전에 이곳저곳 다니면서 유명하다는 데는 다 다녀봤다고 한다.
뒤에 여러 번에 걸쳐 생일을 확인한 뒤에 사주를 펼쳐보니 현재 48살의 나이인데 35살까지 매우 운이 좋왔으나 이후 12여년 동안 운이 매우 나빴었다.

그대로 얘기 했더니 씩 웃으면서 자신이 어릴 때 젊은 나이에 토스카나 무스탕 피혁가죽 공장을 두 곳이나 운영했었다고 한다.
이후에 건강식품에도 손을 대서 스쿠알렌, 죽염, 달팽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업을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정말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하는 일마다 망해먹기 시작했고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또 도전을 해 봐도 계속 망해나가기만 했다고 했다.
정식으로 두 번을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며 세 번째 부인은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살다가 헤어졌다고 했다.

사업이 망한 뒤에는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었다고 한다.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고기잡이 배까지 타봤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일해 본 것은 2년 전으로 방배동 모 아파트에 경비로 일하다가 자존심에 뛰쳐나와 부동산을 하겠다고 덤볐으나 제대로 되지 않자 자포자기로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내다가 결국 현재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 사람의 사주는 결코 책에서 이야기 하는 거지 사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재가 용신이 되는 돈과 인연이 많은 사주였다.
부인복도 많은 사람이었다.
다만 고집이 세고 생각이 극단적이며 자존심이 매우 강했고 중요한 것은 최근에 들어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워낙에 타고난 성격이 고집이 세고 극단적이다 보니 사업도 그런 식으로 했고 돈이 벌릴 때는 바람도 수없이 폈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 인물도 잘 생긴데다 돈도 많았으니 자연히 생활은 방탕해졌고 많은 여자들과 술 속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 부인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하지만 주의에 여자는 항상 많았기 때문에 다시 여자를 만났으나 그의 방탕한 생활은 계속 되어 결국 두 번째 부인도 떠났고 그래도 또 생긴 여자 역시 떠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 시간 여 동안 얘기를 나누다 창인지 가요인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가게를 나가버린 그 노숙자의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살다보면 정말 운이 좋지 않아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버티느냐에 따라 사람의 모습이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순간 잘 못 마음먹으면 한순간에 그 사람과 같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는 이제 부양해야 할 가족이나 먹고살아나가야 할 걱정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배가 고프면 소주 한병만 있으면 해결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들어 누우면 침실이었다.
정신상태가 무너져버린 그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기회가 오더라도 다시는 잡을 수 없게 변질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게 되기 위해서라도 어려울 때 잘 참고 견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