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깡신선

(2005-11-03 16:24:39, Hit : 3410, Vote : 832)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잃어봐야 안다.

벌써 11월이 되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이 막아도 막아도 흐르고 한번 지나가면 소걸음 처럼 느릿느릿 가는 것 같아도 어느새 돌아보면 쏜살과 같이 지나갔다는 느낌을 준다.(이거 일수 찍어보면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데.... ㅠㅠ)

우리 모두는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나는 2001년 이후 빨리 5년이 지나가기를 바랬다.
이 어려운 5년이 빨리 지나가야 좋은 운이 오기때문이다.
물론 이 동안 나이를 먹을 것이니 전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힘든 삶이 이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아무리 군자안빈 (군자는 가난 속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는 요새와 같은 자본주의 개념의 사회에서는 초라해질 뿐이다.
자신의 초라함을 이겨내고 견디기 위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뒤에 달인지명이 없었으면....

어쨋든 그 지긋지긋한 5년이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느라고 숨이 깔딱깔딱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인(忍)하고 있는 중이다.

정말 지난 5년여간 나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돈 명예 사랑 체면 등등등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들은 모두 잃었다.
종종 하늘에 대고 더 이상 나에게 가져갈 것이 있으면 가져가보라고 악도 써봤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걸 괜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ㅠㅠ)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이것만은 아니겠지 하면 가져가 버리고 그래도 이것은 마지막이다 하면 가지고 가 버리고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은 다 가져가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때가 거의 되었다고 생각했었다.(왜? 절처봉생이니까. 꼭 죽을만 해야 살려주는 법칙에 의해서... *-_-;; )

그런데 덜컥! 한가지 정말 이것은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마지막 히든카드 마저 이번에 가져가고 빼앗기고 있는 것을 느꼈을 때 아~~~ 아직도 나에게 잃을 것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항상 나하고 같이 했던 것이고 항상 있었기 때문에 미처 생각을 굳이 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생각도 못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바로 건강이었다.

성경책에 나오는 욥이 재산을 잃고 부인과 자식 등 모든 식솔들을 잃고도 하느님을 버리지 않고 믿었기 때문에 후에 다시 돈도 벌고 아름답고 젊은 부인을 맞이하여 자식도 다시 생산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보며 이것은 인권침해라고 이야기 했던 나인데....
(왜? 인권침해냐고요? 아니 욥만 사람인가? 그럼 부인과 자식들은 죽어도 괜찮은 무슨 욥의 장식품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는고지....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남편 아버지 잘 못 만나서 고생하다가 영문도 모르고 일찍 죽어버린 케이스 인데..... 하여간 주인공 해야 한다니까)
하여간에 그에게는 아직 건강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젊은 부인을 다시 만나도 비~ 뭐도 없고 씨~ 뭐도 없는 그 시절에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어쨋던....
며칠 전에 한 번 혼이 난뒤에 사실은 그 전부터 입술 한 쪽이 마비되고 손이 떨리고 뒷골이 땡기고 하는 따위의 증상이 있었는데고 불구하고 그것이 모두 좋지 않은 운 때문에 생긴 스텐레스 때문일것이라는 추측으로 견디어 오던 나의 무식함이 우연히 재본 혈압 수치에 놀라고 깨지고 무너지면서 참담 그 자체로 내려앉아 어깨 축쳐져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아침마다 꼬박 꼬박 혈압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야 ....

지금까지 나에게는 건강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 마저도 잃는구나 하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사과를 먹어야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왜? 과일이 혈압에 좋다니까) 하기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공기가 없으면 당장 죽어버릴 수 밖에 없으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 고마움을 모르며 물이 없으면 당장 삶이 끊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물의 존재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 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에 사무치도록 돌아보게 해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내게는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너무 많다.
그래도 아직은 우둔한 총기가 조금은 남아 있어서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으며 팔다리 등 신체부위가 제 위치에 달려있어서 각기 그 작용을 하고 있으니 (뭐~~ 한 가지는 제 작용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있긴 하지만.... 씁쓸~~)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거나 하여 나의 총기를 잃었다면... 만약 나의 신체 일부가 없어서 삶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 ....

아하~~~~ 그래........
아직은 살만하다........

혹시 내년부터 운이 좋게 바뀌면 한 가지 제 작용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이 제 작용과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원대한 희망과 꿈을 버리지 않고 오늘도 아침에 혈압약을 먹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