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깡신선

(2003-10-13 21:24:37, Hit : 5152, Vote : 841)

이별도 정해진 운명이다

이별도 정해진 운명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싫증이 났기 때문에, 혹은 자기 의지로, 또 혹은 상대방의 의지로 헤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계절이 바뀌듯, 만남의 시기가 끝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마지막이 오는 그날까지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드보일드' 중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는 감성적인 문체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젊은 여성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일본의 신세대 작가입니다. 근래의 일본소설이 대개 그렇듯이 일상의 세목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지요.

이 대목만 보더라도 그의 사랑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이란 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무겁지도 않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별을 인간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란 하염없이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에 다름 아닙니다.

사랑이 떠나간다고 해서 울고불고 할 것 없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만남을 운명이라 여기고 그것에 집착하지만, 이별도 정해진 운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 때문에 마음 상할 일이 없어지게 될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 안도현 시인의 '러브레타' 중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이별이나 헤어짐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사랑 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에 가슴아파하는 연인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여간 가슴아픈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답변은 마치 감정이 없는 싸늘한 한겨울의 모루쇠 처럼 차갑게 말한다.

"잊으세요!"

어떤 경우에는 이 차가운 말 한마디를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빙빙 돌아 돌아 위로의 말도 조금 겻들여서 완곡한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잊으세요!"

그 이유를 요시모토 바나나 가 아주 적절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렇다.
이별도 정해진 운명중의 하나다.

굳이 한마디 더 붙힌다면 이별은 다른 만남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못 만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다른 사랑을 만나 빠지는 순간에 전에 했던 사랑은 까맣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이별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여!
이별도 정해진 운명이다.
만남도 정해진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