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깡신선

(2007-05-16 23:26:40, Hit : 6609, Vote : 848)

澹泊明志 (담백명지) .....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서 다녀온 중국여행은 나에게 참 행운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20살 때 미국에 건너가서 20년을 살았다.
즉 한국에서 태어나 20년간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인 성장과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을 키웠다면 그 뒤 20년간 미국에서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배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강대국으로 지금 세계를 자기네 마음대로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나라인 동시에 국토의 크기도 엄청나게 큰 나라이다.
그러한 나라에서 20년 동안 사는 동안 실질적인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많이 배웠지만 무언가 부족한 면을 떨칠 수가 없었고 그러한 부족함을 메우려는 욕망이 나를 20년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와서 지낸지 10년 동안 항상 중국이 가보고 싶었다.
사실 중국에 가보고 싶은 욕망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중국에 가보고 싶은 욕망은 더 구체적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서양에서 가장 크고 잘 사는 나라를 보았으니 이제 동양에서 가장 큰 나라를 한 번 보자는 욕망이 항상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홍콩도 수차례 가 보았고 대만도 가 보았지만 왠지 중국 같지 않은 그러한 느낌이었다.
대만에서 장개석 기념관 인가를 가 보았을 때 그 규모가 약간 한국과 일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긴 했었지만 그렇게 크게 중국이라는 느낌은 와 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중국 여행에서 방문한 북경의 고궁이나 만리장성 외 명 13릉, 이허웬 등에서 느낌은 홍콩이나 대만에서 받은 느낌과 달랐다.
같은 동양이기에 이해하기가 편안한 면도 있었지만 유적지의 규모나 그들의 생각을 같이 읽을 수 있는 실생활의 모습은 중국의 일부분일지언정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딘지도 모르고 발길 닿는대로 갔다가 들르게 되었던 류리창 이라는 한국의 인사동과 같은 곳에서 만난 "澹泊明志(담백명지)"라는 글귀다.
이 "澹泊明志" 4 자의 글귀를 보는 순간 내 눈은 이 글자에 고정되었고 마음은 쏙 빼앗겼다.

류리창은 원래 원나라 때 유리 기와 공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북경에 과거를 보러 온 사람들이 과거에 떨어진 뒤 고향에 돌아가기 위한 여비를 만들기 위해 자신 들이 가져온 서적, 먹, 벼루 등을 팔았던 것을 시작으로 후에 청나라가 망한 뒤에 몰락한 귀족들의 자손들이 문중에서 소장했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팔면서 시장이 형성되어 현재는 북경에서 유명한 골동품 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정말 값진 골동품은 찾기 힘들고 동양화나 모조 골동품 혹은 유명 차(茶)를 파는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분위기의 거리가 되었다.

이 거리에서 이가게 저가게 들어가 구경하다가 내눈을 딱 잡은 액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담백명지"라는 글귀였다.

처음에는 이 글귀를 보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원래 질질 끌거나 해설이 많거나 하는 것 보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지라 글을 딱 보는 순간에 담백하고 밝은 뜻이라는 단순한 해석이 눈을 확 끓어당긴 것이다.
복잡 미묘하지 않고 단순하게 담백하면서도 그 뜻이 밝고 명확하다면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있으랴?
정말 나의 생각과 딱 맞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바로 사진 한장 찍고 이곳에 오기를 정말 잘했구나 하는 뿌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그래도 이 글의 제대로 된 뜻이라도 알고 싶어 여기저기 뒤져보자 이 글에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아냈다.
일단 눈에 들어온 기사가 "서예작품가운데 가장 비싼 작품은 안중근이 1910년 2월 여순감옥에서 쓴 휘호 `澹泊明志寧靜致達(담백명지영정치달)`로 2억원에 달한다." 라는 헤럴드경제 신문의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담백명지 뒤에 영정치달이라는 4자 가 더 붙어있는 것을 보고 그 뜻이 더욱 궁굼해졌다.
하지만 이 기사에 뜻풀이는 없었다.

다른 곳을 보니 뜻을 이렇게 설명한 사람이 있었다.
"예전에 인촌 김성주씨의 글 중에 담백명지(뜻을 분명히 두고 행동하라)란 말을 나의 생활 신조로 잡았다."
즉 담백명지의 뜻은 "뜻을 분명히 두고 행동하라" 가 된다.
하지만 이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뒤에 있는 영정치달의 뜻이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곳을 찾아보니 신일 중학교 교실에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라며 澹泊明志寧靜致遠 이라는 글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뜻이 써져 있었는데...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 된다" 라고 되어있다.
신문기사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8글자 중 마지막 글자가 기사에는 達(달)이고 교실의 벽에 걸려 있는 글에는 遠(원)이라고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알수가 없다.

거기다가 뜻의 풀이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 된다?
물론 한자를 한글자씩 해석을 하면 이런 뜻풀이도 가능하겠지만 이게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썼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본토로 가서 뜻을 알아보는 것이 가장 상책이다.
중국말은 중국사람이 해석을 해야 가장 정확한 것이 아니겠는가?
해서 중국 싸이트를 찾아보니 뜻이 이렇게 나왔는데...

여기서는 澹泊明志 보다 寧靜致遠이 무슨 뜻인가? 하고 뒤 4 글자에 더욱 비중을 둔 것 같은 제목의 글이 있었다.

“宁靜致遠”是什머意思？

成语澹泊明志，宁静致远
发音 dàn bó míng zhì, níng jìng zhì yuǎn
解释澹泊：不追求名利；宁静：心情平静沉着。不追求名利，生活简朴以表现自己高尚的情趣；心情平稳沉着，专心致志，才可有所作为。
出处汉·刘安《淮南子·主术训》：“是故非澹漠无以明志，非宁静无以致远。”
示例至于宽闲之野，寂寞之滨，每自寓其天怀之乐，而～，未尝不处处流露。（清·无名氏《杜诗言志》卷三）

한자가 매우 많기 때문에 해석은 여러분들이 직접 하기 바람 ^^ 하고 싶지만 그래도 뜻을 알고 싶으니까 어술픈 해석을 해본다.

일단  澹泊은 淡泊 으로도 쓸 수 있어 어떤 글에는 淡泊以明志，宁靜而致遠 로 소개 되기도 했다.
여쨋던 간에 澹泊은 不追求名利(불추구명리)하고 했으니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주자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季札(계찰)을 소개하기를 담백무욕(淡白無欲) 이라고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즉 욕심을 가지지 않고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 담백한 마음으로 뜻을 분명히 세워 까지가 澹泊明志의 뜻풀이가 되는 듯했다.

그 다음 寧靜 의 뜻은 마음이 평정하고 침착한 것이라고 했다. 고요하지만 굳건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들어내서 호들갑 떨지 않고 고요하지만 굳건하게 전심으로 뜻을 이루려고 하면 비로서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澹泊明志，宁静致远 의 뜻은 "욕심을 버리고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 담백한 마음으로 뜻을 세워 고요하고 굳건하게 전심으로 꾸준히 해나가면 하면 비로소 이룰 수 있다" 라는 뜻이 되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듯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뜻을 세울 때는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일을 할 때도 떠벌리며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그 결과에대해 얼만큼 만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다군다나 계획했던 이익이 얻어지지 않을 경우 실망을 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목표가 크고 명확해야 비로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그런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을 크게 돌이켜 볼 때 궁극적으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생각할 때 호들갑 떤 만큼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어짜피 우리네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한치의 마음의 동요도 없이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사람을 우리는 성실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런 마음으로 일을 이루어 나갈 때 조그만 실패에도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꾸준히 자신의 해야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요즈음 서예에 재미를 느껴 거의 매일매일 몇자씩의 글자를 쓰고 있다.
서예를 시작한지 아직 1년 반 남짓 한 세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써나간다.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한 3년 정도 써야 글을 좀 쓸 수 있게 되고 한 10년은 써야 어디 가서 글 좀 씁니다 라는 소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을 하루에 욕심을 내어 빨리 쓰려고 무리를 한다고 해서 빨리 되는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처음 시작할 때 무리하게 빨리 글을 배우고 싶어 20자씩 체본을 써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 3달을 가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고 한다.
쓴 글자를 또 쓰고 또 쓰고 ... 한 글자를 한 1,000번은 써야 그 글자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전에 운동을 가르칠 때 생각도 났다.
처음에 욕심을 내어 무리한 사람들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한다.
또 운동을 좀 해서 실력이 붙었다고 무조건 남을 이기려고 하거나 시합에 나가 상 타는 것에 목표를 둔 사람은 그 목표를 얻는데 실패했을 때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글을 쓰는 것이나 운동을 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아니 몇 달 했다고 잘 되고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사람 처럼 매일매일 단 몇 글자라도 쓰고 또 쓰고 꾸준히 1년을 쓰고 2년을 쓰고 10년을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명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운동도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단에도 연연해하지 않고 실력이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도 그저 꾸준히 5년 10년 20년 하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도 돈을 많이 벌려고 명예를 높이려고 애를 쓰면 쓰는 만큼 실망도 크고 좌절도 큰 법이다.
그저 매일매일을 하루만 사는 기분으로 꾸준히 살고 있다보면 어느날 드디어 죽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엥? @_@! 이건 아닌가? 히히

어쨋던 간에 뜻을 바로 알고 나니 이 글의 깊이가 느껴진다.
정말 좋은 글이다.
마음에 든다.

澹泊明志宁静致遠  크아~~~~ 멋있지 않은가?

황석태 (2007-05-18 16:44:19)

중국에 가셔서 정말 좋은 경험 많이 하신것 같네요..
또 창원입니다. 어째 창원에 올때만 이런 답글을 쓰게 되는지 원...

서예 말씀하시니깐 예전 초등학교때 서예배울때 저의 스승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서두르지 말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꼬박꼬박 글쓰기를 해야한다고 하셨고 본인이 직접 실천하시면서 초등학교 4학년인 저를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오게 해서 최소 3시간은 연습을 시카셨죠..
지난 일요일에는 딸아이와 오랬만에 인사동에 갔었습니다. 붓과 먹을 사주었죠.
벼루는 예전(한 25,6년전)에 상으로 받은것이 있어서 안사구요..
딸아이 서예와 사군자를 가르쳐 볼까 합니다.
그런데 제가 딸아이와 만나는 시간이 적다보니 어찌 될런지는 모르겠네요..
새삼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붓을 잡아 보니 마음만 앞서고 손이 잘 말을 안듣더군요..
주말만이라도 먹을 갈고 글씨를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담백명지.. 정말 좋은 글이네요..
초등학교때 처음으로 쓴 글은 초지 일관이었는데..

웬지 요즘은 자꾸 어릴적 생각이 나고, 아버지가 계시던 시골학교가 생각이 나네요..

돌깡신선 (2007-05-18 22:44:18)

잉? 황석태가 서예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었네... 반갑구만...
그래 시간내서 계속 써봐야 돼...
엊그제 서 과장이 밤 늦게 전화했었다. 시간 한 번 내자고 했네...창원에서 올라올 때 서로 연락해서 시간 한 번 맞추어보자고...

황석태 (2007-05-18 23:04:16)

앵? 제가 말씀 안드렸었나요? 저 국민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서예를 했었어요.. 국민학교때는 소위 날렸었죠. 전주시, 전라북도 대회는 거의 쓸었고 전국대회도 많이 참가해서 서울 어린이회관등에 가서 상도 많이 받았었죠..

그런데 한문은 배우다가 그만두어가지고서리.. 쩝.
국민학교 6학년때 한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대회 출전하느라고 한문연습에 소흘해져서리.. 그래도 기본은 좀 배웠죠. 사군자는 중학교때 배웠구요.. ㅎㅎㅎ

서과장하고는 지난번에 만나서 소주한잔 했었는데, 고민이 많은 것 같더군요..
다 제가 지를 내버려두고 뛰쳐나가서 그런것이라고 뭐라고 하더군요..

그날 술 많이 먹었습니다. 둘이 소주 5병에 사케 2잔씩 으..
사실 그날 저는 점심도 굶었었는데..ㅜㅜ